‘할랄’은 히브리어 스트롱코드 ‘1984’ 에 해당하는 단어로,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인 ‘할렐루야’의 동사 원형이다.

(참고로, 본 목회 칼럼에서 말하는 ‘할랄 הָלַל’은 이슬람교에서 무슬림들이 음식에 대해 말할 때 사용하는 ‘할랄’과 아무런 상관도 없고 또한 전혀 다른 것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이 ‘할랄’은 ‘찬양하다, 비추다, 자랑하다 등’의 기본적인 뜻을 갖고 있다. ‘할랄’을 포함하고 있는 ‘할렐루야’의 뜻은 ‘하나님을 찬양하라 (Praise God)’ 이다. 시편에 있는 ‘할렐루야’를 영어 성경에서 찾아보면 한국어 번역 본과는 다르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Hallelujah’로 쓰여 있지 않고, 많은 부분에서 ‘Praise the Lord’ 또는 ‘Praise him’과 같이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Hallelujah’로 적혀 있지 않아서 잘 못 된 것이 아니다. 히브리 원어를 영어로 옳게 해석한 것뿐이다. 단지 몇몇 한국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해석하지 않고 발음 그대로인 ‘할렐루야’로 적었다. 그래서 우리는 ‘할렐루야’라는 단어가 친숙하다. 물론 헨델의 오라토리오인 ‘메시야’의 ‘할렐루야’도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할렐루야’라는 단어를 친숙하게 하는데 크게 쓰임 받은 것도 사실일 것이다. 특별히 ‘할랄’은 시편의 149편과 150편에서 그 뜻을 매우 잘 알 수 있다. 시편 149편 1절을 보면 “할렐루야 (할랄 הָלַל), 새 노래 (쉬르 שַׁיר)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 찬양(테히라 תְּהִלָּה) 할지어다”이다. (개역개정) 
이 부분을 해석하면, ‘하나님을 할랄하라, 새 쉬르로 쉬르하며 예배 가운데 테히라를 할지어다’로 적을 수 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을 할랄하라’ 그 ‘할랄’이 무엇이냐 하면, ‘새 쉬르로 쉬르하는 것이고 예배 가운데 테히라를 하는 것이다’로 표현된다. 그렇다면 ‘쉬르’와 ‘테히라’는 ‘할랄’에 포함이 된다. 마찬가지로3절 ‘춤 (마홀) 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 (할랄)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 (자마르 זָמַר) 할지어다’, 부분도 하나님 앞에서 그의 이름을 높여 드리는 행위에 대해 말 하고 있다. ‘춤’을 추는 것이 ‘할랄’이며 ‘악기를 다루는 행위 (자마르)’도 ‘할랄’로 볼 수 있다.

시편 150편은 찬양에 대해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할렐루야 (할랄)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할랄) 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 (할랄)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 (할랄) 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랄) 할지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할랄) 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랄) 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 (할랄)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랄) 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랄) 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랄) 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랄) 할지어다 할렐루야 (할랄) (시편 150편, 개역개정)

총 여섯 구절로 되어 있는 시편 150편에 ‘할랄’이 총 13회 나온다. 특별히 ‘찬양’에 해당하는 모든 단어를 오직 ‘할랄’로만 적었다.
1절에 나오는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할랄)하며’에서는 ‘할랄’이 아닌 ‘쉬르’, ‘꼴’, ‘테히라’, ’리나’, ‘샤바흐’, ‘샤마흐’, 혹은 ‘라난’ 등으로 대신 적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모든 뜻들이 본질적으로 모두 다 ‘하나님을 높여드린다’는 행위의 뜻을 갖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2절을 보면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 (할랄) 할지어다’ 에서도 마찬가지로 ‘야다’, ‘룸’, ‘바라크’, ‘테히라’, ‘꼴’ 등으로 적을 수 있다. 특별히 3, 4절은 악기로 찬양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심지어 8가지의 악기 이름을 나열하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단 한번도 ‘자마르’을 사용한 적이 없다. 이 부분은 당연히 ‘자마르’가 적혀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오직 ‘할랄’만 적혀 있는 것은 ‘할랄’에 이 모든 뜻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당시 찬양 인도자들은 제금을 크게 치는 자들(대상 15:19)이었다. 다시 말하면, 시편 150편 5절은 당시 인도자들을 표현하는 구절인데 이 부분 마저도 다른 단어들인 ‘테히라’, ‘나바’등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할랄’만 사용했다.

이 모든 부분을 정리해 보면, ‘새 노래’로 하나님께 ‘노래하는 것 (쉬르)’도, ‘춤’으로 하나님께 ‘춤을 추는 것 (마홀)’도, ‘회중들이 모두 함께 ‘즐거운 소리 (꼴)’로 하나님을 향해 ‘소리 내는 것’도, 그리고 모든 종류의 ‘악기 (자마르)’로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도, 찬양 인도자가 찬양을 인도하면서 하나님께 반응하는 모든 행위들 (야다, 룸, 나바, 쉬르) 등 모두 다 ‘할랄’’로 표현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에서 마지막 장인 150편, 그리고 그 150편에서 마지막 절로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의 구절이 시편 전체의 마지막으로 위치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사야 43장 21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우리가 ‘테히라’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편’의 책 제목도 히브리 원어로 ‘테히라’의 복수형인 ‘테힐림’이다. 그런데 시편 150편 6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리들을 ‘호흡이 있는 모든 자’로 표현하고 있다. ‘호흡이 있는 모든 자들의 반응이 ‘테히라’를 넘어선 ‘할랄’로 적혀 있는 것은 ‘할랄’의 포괄성을 말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