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적, 나름 귀엽고? 순수했던? 초등학교 시절, 하루는 어머니께 용돈을 받아서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 달려갔던 적이 있다. 성경책을 사기 위함이었다. 당시 성경책은 세로로 적혀있는 성경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읽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용돈을 받자마자 주말에 일부러 교보문고로 달려가서 성경책을 샀던 기억이 있다.
성경책을 사기는 했지만 특별히 읽었던 기억은 당연히 없다. 교회에 어른들 보라고 비치해 놓은, 세로로 된 성경책을 보고 있는 친구들과는 다른 나의 모습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마 그때 성경을 읽고 제대로 주님을 만났더라면, 중/고등/대학/청년시절의 허랑방탕한 삶은 남의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개역개정)’
2002년도에 주님을 체험하고 제일 먼저 찾게 되었던 것이 ‘성경책’이었다. 성경을 안보면 주님을 알 수 없을 것 같았고, 주님을 알기위해서는 말씀과 기도를 해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이야기 하는데, 그때 말씀과 기도에 집중했던 것은 결코 내가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100% 주님의 은혜였다. 목사인 지금도 그 정도로 말씀과 기도에 집중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늘 그리운 시절로 내 안에 남아있는 귀한 추억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추억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내 나이가 아직 너무 젊고 힘과 열정이 있다. 그리고 주님 만난 초기에 그런 증상?을 주신 이유가 단지 그리워만 하라고 주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어떻게 하면, 그때처럼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그 말씀을 약속으로 받고, 당장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것도 없었으면서 주님으로 행복할 수 있었을까?

이 부분에 대해 짧게 정리해 보겠다.
먼저 내가 말씀에 집중했을 때는, 개인적으로 죽을만큼 힘들 때였다. 단순히 힘들어서 죽을만큼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살았을 당시였다. ‘생명의 위협’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와 재정 등 처해있는 모든 상황이 표현할 수 없을만큼 꼬여있었다.
그때 주님을 만났고, 그때부터 말씀을 보기로 결단하고 보기 시작했다.
말씀을 보기 시작하는데, 신기하리만큼 마음에 평안이 오기 시작했고, 심지어 그 말씀들이 믿어지면서 담대해지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서는 기쁨이 차 오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사는 이유가 불분명했었다면 말씀을 보기 시작하니까 살아야 하는 목적이 분명해졌다.
아마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주변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꼬여있던 모든 상황들은 어느 날 정신차려보니까 나에게 더 이상의 문제가 되지 않았고, 위협받고 있었던 내 목숨도 가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걸 보니 별 일 없는것 같다.

우리 모두는 세상을 살면서 여러 종류의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된다.
바로 그때 무엇을 의지하느냐는, 그 다음 삶의 여정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힘들고 지치고 어려운 시간 속에서 ‘약속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습관을 들여야만 한다.
그런데, 단순히 말씀을 보고싶은 마음만 갖고 있는다든지, 아무 생각없이 말씀을 읽기만 한다면, 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결단하는 기도가 필요하다.
오늘, 바로 지금, 주님의 ‘살았고 운동력있는 말씀,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말씀’이 내 삶에도 깊게 들어오시기를 위해서 기도하자.
그래서 나와 가족과 목장과 직장과 교회와 지역과 나라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귀한 일에 쓰임받을 것을 위해 힘을 다해 기도하자.
기도는 우리의 몫이고,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다. 기도의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의 콸러티’다. 간절한 소망으로 5분을 기도하는 것이, 졸면서 기도하는 10시간보다 훨씬 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멜번방주교회 모든 성도분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으셔서 기쁘고 복되고 행복한 이번 한주 되시기를 살아계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하늘 복 많이 받으세요~